
세상의 우연이라는 것. 그것의 풍부한 유머감각과 개연성에 고개를 숙이는 일이 요즘 꽤나 잦다.
정밀한 설계도대로 움직여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쯤은 알고 있지만, 때로는 무슨 순번을
정하듯, 혹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물이 흐르듯 서로 연결되어 이어지고 있다.
오랜만에 시애틀에 사는 친척의 소식을 듣고, 하늘이 넓게 보이고..어느 지인이 시애틀로
간다는 소식을 듣고..꽃이 핀다.
그리운 사람들의 이미지는 마음의 액자처럼 어느 공간에나 걸려 있으며,
단단히 굳은 땅은 조금씩 숨을 쉰다.
'시애틀의 우체부'라는 책은 어느 순간 내 손에 쥐어져 있고..커피의 향은
스페이스 니들이 그려진 작은 편지지에서 가득 맴돈다.
그렇게 시애틀의 지명이 자주 언급되면서 그곳에서 지냈던 시간이 하나 둘..떠올려지는 것이다.
'흔적없이 사라진다'라는 말이 있다.
사람이 그러하겠지만..과연 그런일이 가능할까.
그저 풀밭에 잠시 앉더라도, 내 자리에 어느 풀이 꺾이였는지..모를 일이다.
그런 흔적을 눈여겨보지 않았을 뿐..혹은 모른척 할 뿐이지 않을까.
I was there to ...
내가 남긴..그래서 혹시라도 기억될 그 의미있는 '흔적들'에 대한 연민이 어쩌면 지금의
우연을 가장하여 나에게 자꾸 그때를 떠올리게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잊혀지는 것이다.'
'잊혀지지 않는 것이 아니라 떠올려지지 않을 뿐이다.'
그 무엇이 되었던 간에..
편지지에 담지 못한 여운의 말들이, 글들이 또 다른 이야기로 지금 이곳에 담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