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이즐넛 커피는 에스프레소에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늘 Filter coffee로만 마셨기 때문에 더 그렇게 느껴졌는지 모른다. 아니면, 헤이즐넛은 향을 위주로한 커피이기 때문에 진한 풍미와 그윽한 에스프레소의 맛을 이루기에는 뭔가 부족함이 있다고 생각되는 나의 '상식' 이 자꾸 그렇게 정형화 시켰는지 모른다. 그게 정답일 수도 있고 말이다.
그렇지만 별 수 없는 것은 현실이라고..집에 있는 것이 Vanilla Hazelnut뿐이다. 그럴 때는 고민할 필요없이 모든 원두는 모두 제각각의 매력이 있다고 믿으며 받아들이는 것이다.
전동식 그라인더(Electric blade grinder)가 찾으려니 없어서 요즘은 계속 핸드박스(Hand Box grinder)로만 쓴다. 커피에 관심이 없을 때 그저 장식용으로 구입했던 것이 지금은 필수품이 되었다. 그런 물건들이 있는데, 어떤 용도로 만들어진 것이 분명한데도 전혀 그 용도로 쓸수는 없을 것같이 보이지 않는 것 말이다. 이게 그랬다. 그저 운치있는 장식품 정도로만 생각했다. 그런데 그 안에 원두를 넣고 손잡이를 천천히 돌렸더니, 원두가 제법 갈아지는 것이 아닌가! 수동식이라 수고스럽고 굵기 조절이 되지 않아 필요하면 두 세번 갈아야 하지만, 왠지 열심히 손잡이를 돌려 원두를 갈아가면서 커피를 내려보니, 더욱더 애정이 생긴다. 무척이나 귀한 음료를 마시는 것처럼 경건함까지 든다. 이것도 하나의 Slow Food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커피가 갈리는 동안 바닐라 헤이즐넛의 향이 혼미할 정도로 넓게 퍼진다. 벌써 한 잔의 커피를 마신 것 같다. 곱게 갈은 커피를 포터필터에 넣고 커피를 내렸다. 더블샷의 크레마가 짙게 커피잔 안으로 물든다. 우유를 저그의 반 정도 담고 포밍을 시작한다. '쉬우익' 소리가 귓가를 유쾌하게 자극한다. 거품이 넘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요즘은 이상하게도 라떼를 만들고 그 위에 코코아 가루를 뿌려서 마셔야 기운이 난다. 커피를 한번 더 내리고 이번에는 카푸치노를 만들었다. 엄마가 좋아하실 것 같다. 우유거품이 크림처럼 풍성하다. 오늘은 꽤 잘 된 것 같다.
한 모금..조심스럽게 입안으로 담는다. 매혹적인 맛!
헤이즐넛 라떼는 만족스러울 정도로 맛있고 따뜻했다. 결국 정해진 틀이라는 것이 옳기도 하겠지만, 늘 완벽한 것은 아니라는 점을 오늘 이렇게 배운다. 충분히 다채로운 무언가를 위해서 틀을 깨는 재미가 언제나 우리 주변에 이렇게 널려 있다. 특별히 이런 커피에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