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겨울부터 어떤 문제에 답을 얻지 못하고
때론 대범하게
때때로 경솔하게
아무렇지 않은 척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예민한 혹은 영민한 누군가는
나의 그런 흐트러짐을 눈여겨봤고
늘 그렇듯 누군가는
아무것도 내게서 얻은 게 없었다.
난 습관적으로 엄마와의 안부 통화에서
늘 괜찮고
오늘도 별일이 없다고 말해왔는데,
올해 초 4월이었나.
통화의 말미에
어디론가 여행을 가면 좋겠다는 습관 같은 그 말에
'엄마, 나도 갑자기 날이 흐리던 파리가 그립네.
공항의 그 긴 통로도 생각나고.
아, 시애틀 기억나?
그 차에서 나던 가죽 시트 냄새. 그것도 막 기억이 새로워.'
별 얘기가 아니였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인사를 하고 끊었다.
-
그날 밤에 남동생에게 연락이 왔다.
'누나, 여권 갱신했어?
다 내려놓고, 회사도 그만두고
아님 휴가 좀 내서
우리 어디 여행 가자!
가죽 시트 냄새를 말했다며,,
얼마나 힘들었으면 그랬겠어!
엄마가 너무 속상하시대.'
'아니, 가죽 시트 냄새가 그리울 수도 있지,,뭐! 갑자기 무슨 소리야!'
나는 조금 민망하기도 하고
재밌기도 하고 그래서 소리 내 웃었다.
그리고 새벽에 훌쩍 울었다.
누군가를 안다는 것
아낀다는 것은
아주 사소한 이야기에서도
트리거처럼 반응하는 무언가를 눈치채는 것은 아닐까.
수화기 너머로
힘들다는 한 글자도 얘기 안 했는데.
이미 알아 버린 엄마와
그 일련의 대화에서
예측되는 내 위태위태함을
감지한 동생의 긴급함. 간절함. 아련함.
결과적으로
나는 나를 잃지 않고
해답을 찾아
이제 12월이 되었다.
일상에서 길을 잃을 때
예기치 않게 찾아오는
표지판 같은 일들
다정한 사람들
나는 지금도 동생의 그 안타까움의 메시지를 보면
든든하다.
내가 '아'..라고 말하면
'어'라는 반응조차 사치처럼 만드는
그 진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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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가장 기억에 남는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