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의 중요한 일을 앞두고 도무지 긴장감이 없어지지 않아
와인을 조금 마시려고 하다가 이렇게 되고 만다.
코르크 마개 하나 해결하지 못하는 상황에 웃음도 나왔다가
한숨도 나왔다가
알 수 없는 낭패감에 손가락만 만지작거린다.
그러니까 이런 일은 종종 일어난다.
아주 사소할 수 있는 일이 점점 커지다가
아무것도 아닌 일조차 못하는 상황이 지속되는 경우
예전, 사회 초년생일 때 나는 대략 한 달간 걷는 것이 힘들어서 출근 때마다
숨도 못 쉴 정도로 고생한 적이 있다.
지금 생각해보니 공황 장애가 아니었을까 짐작한다.
지하철역에서 15분 거리의 회사로 이어지는 골목길
마지막 횡단보도가 나오기 직전 약 50미터의 길에서만 일어나는 일
걷지를 못했다.
어김없이 잘 걷다가 그 구간만 나오면 다리가 잘 움직이지 않았다.
내 딴에는 해결해보겠다고
오른발, 왼발 속으로 속삭이고
한 번, 두 번, 세 번 순서도 정해봤지만
쉽지 않았다.
갑자기 잘 걷다가 그 구간만 나오면 일어나는 현상이라
같이 빠른 걸음으로 출근하는 무리 사이에서
나는 갑자기 신생아처럼 되어 버렸다.
너무 부끄러워서 잠시 뭔가를 가방에서 찾는 척도 해보고
휴대폰을 만지작거리기도 했지만
그 50미터가 내게는 매일 블랙홀과 같은 곳
어른으로서 느낄 수 있는 최대치의 부끄러움과 두려움이었다.
그래도 지각하는 날이 별로 없었던 것 같다.
스스로를 다독이는 일이 그때부터 내게 익숙해진 걸까.
그런데 왜 이렇게 순간순간 여전히 어색한 내 자신을 발견할까.
자료를 숙지하고 내가 잘 이해했다고 믿게 하는 일
자신감이 있다고 보이는 일
당황하지 않았다고
지금 여유 있는 모습이라고 보이는 일
이런 일들이
어쩔 때는 정말 커피를 마시듯 일어나다가
어떨 때는
맘에 드는 머그잔 하나 찾지 못하고
서성이곤 한다.
오늘따라 좋지 않은 컨디션을 들키고 싶지 않은 마음일까.
바보 같다가 멀쩡했다가 절망하다가 또 돌아오기를 반복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