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내 모습을 완전히 세팅하기 전에 세상 밖으로 나갈 때가 있다.
즐거운, 힘찬, 가벼운, 홀가분한, 다소 차분한, 들뜬, 쾌활한 모습 중에서 어느 것에 알맞은지
가늠도 하기 전에 혹은 세팅도 하기 전에 지하철역까지 걸어갈 때가 있는 것이다.
사실, 매일 그렇게 정하는 것이 무의미할 정도로 아무렇지 않는 날이 대부분이라면
오늘 같은 날은 나조차도 내가 어떤 모습인지 도통 모르겠다.
지금 내 기분, 상태에 대한 실마리를 못 찾는 ... 그래서 무척 비어 있는 느낌인 날 말이다.
길은 잃지는 않았는데, 땅에 발이 닿지 않은 느낌으로 며칠 보내는 무언의, 무채색의 여러 날들.
아주 어렸을 때부터 그랬던 것 같다. 그런 날들이 계속되면 자꾸 말을 잃거나 혹은 너무 웃음이
많아졌던 것 같다. 그러다가 다시 나를 알아가고, 그러다가 또 헤매고를 반복하며 어른이 되고 또 어른이 되는. 나라는 액자는 점점 더 화려하고 견고해지고, 세월도 느껴지는데 가끔 그림은 그에 발맞추어
따라가지 못하는.
우연히 어제 달 궤도 탐사선인 '다누리'가 달에서 보낸 지구의 사진을 보고 왜인지 모르게 마음이
아렸다. 조금 슬픈 것도 같았나. 아니면 멀리 보이는 지구의 휘몰아치는 대기의 구름 모양에
속이 울렁거렸었나. 흑백의 사진 세 장에 마음을 뺏겨 조용히 숨죽이며 모니터를 뚫어져라 본 것 같다.
지구에서 본 달처럼 달에서 본 지구가 너무 아름다운 것에 잠시 흔들렸나 보다.
보름달처럼 꽉 찬 나는 때때로 그믐달처럼 미미하게 희미하게 그럴 수 있으니까.
비워지면, 또 채워지는 것을 아는데도 가끔 나는, 내가 잘 보이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