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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으슬으슬한 기분에 비까지 내린다. 어느 담장에 핀 장미꽃이 아니라면, 초가을 같았을 날씨. 헤이즐넛 향의 커피와 발리에서 날아온 아라비카를 블렌딩해서 커피를 내렸다. 뜻하지 않게 근사한 맛. 어쩐지 향만 가득한 커피와 풍미가 너무 강한 커피가 만나서 하이브드리적 결과물을 내보인다.   브런치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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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2009/09/13

 

온난한 이웃의 시로코

-My mild neighbor, Sirocco

      written by Beyondcafe

 

충분히 아름다운 샌드위치의 시간들

  며칠은 조용하게 봄이 사라지는 것을 눈으로 지켜보며 보냈다. 여름이 시작되고 있었고, 나는 달력의 날짜보다 더 예민하게 그 열기를 느끼며 새로운 변화를 맞이하고 있었다. 화요일 아침. 조금 늦게 눈이 떠졌다. 어지러웠다. 간밤에 락씨와 함께 늦게까지 술을 마신 기억이 드문드문 났다. 많이 마신 모양이다. 언제 그가 집으로 돌아갔는지 단서도 없이 멍하기만 하다. 오늘은 예약 손님이 없었다. 락씨는 이미 알고 있었고, 나는 꽤나 술이 마시고 싶었던 것 같다. 그냥 마시는 게 아니라, 아주 진탕 마시고 싶은 그런 날 말이다. 어제가 그랬었다.

어제 밤 10시쯤 카페 정리가 끝난 후, 락씨는 어디서 구해왔는지 그저 신기할 따름인 독일제 소시지 통조림을 하나 가져왔다. 그는 매번 그렇게 무언가를 뜬금없이 가지고 왔는데, 정말 그게 너무 뜬금이 없어서 늘 감탄스러웠다. 독일에서 맛본 소시지가 너무 그립다고 한마디 한 적이 있었다. 국내 반입이 어려워서 아쉬웠다는 내 말을 기억하고 있었나보다. 락씨는 그렇게 사람을 감동시키는 법을 아는 사람인데, 솔직히 그런 점이 그와 어울리는 것은 아니어서 적잖이 당황스럽다. 물론 그에게 그렇다고 얘기한 적은 없지만. 락씨는 통조림의 뚜껑을 바에 앉아 유연하게 딴 후, 접시에 담아 전자레인지에 넣고 돌렸다. 수석 주방장 출신의 락씨가 친근하게 전자레인지를 이용하는 모습은 언제 봐도 재미있다. 아니, 통쾌한 느낌마저 든다. 언제 한번 그런 내 느낌을 얘기한 적이 있는데, 락씨는 정색을 하며 그건 고질적인 내 고정관념 때문이라고 했다. 사실, 내가 락씨에게 가질만한 고정관념이라는 게 과연 존재하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고 대답했지만 그는 듣고 있질 않았다. 락씨는 가끔 대화의 기본예절을 본인의 의지로 가볍게 무시하곤 하는데, 그게 참 자연스러운 것이 문제라면 문제랄까.

나는 늘 그렇듯, 기네스 3캔과 밀러 2캔 그리고 얼음물을 준비해서 테이블로 가져갔다. 도를 넘게 많이 마시고 싶을 때 내가 마시는 양이었다. 중간 중간 얼음물 마시는 게 중요한데, 꼭 레몬 조각을 곁들어야 한다. 그래야 취하는 맛이 난다. 맥주와 얼음물에 넣기 위해 늘 넉넉하게 레몬을 준비해 놓는 버릇도 그래서 생겼다. 기분 나쁘게 엉망으로 술을 마신다고, 별안간 말을 꺼내 분위기를 흐린 것은 락씨였다. 무슨 말인가 했더니, 레몬을 기네스와 밀러에 넣고 마시는 것을 얘기한 것이었다. 그게 왜 엉망인 방법인지 따지기도 애매했다. 특히 락씨와 같은 사람에게 그런 문제를 논리적으로 논하기는 꽤나 어려운 문제였다.

“습관들이지마.” 락씨는 무미건조한 음성으로 말했다.

“뭘요?” 나는 얼음물을 마시면서 그를 쳐다보았다.

“습관을 가지는 것이 나쁘지 않지만, 특히 그게 먹는 것일 때는 사람을 참 힘들게 하거든. 네 몸을 거기에 맞추게 될지도 모른다고. 그러니까, 그런 습관은 애초에 들이는 게 아니지.”

그렇게 또 나를 몰아붙이는 락씨였다. 기네스와 밀러, 레몬 그리고 얼음물이 만들어낸 습관적 음주는 ‘애초에’라는 말과는 무색하게 이미 내 분신처럼 자리 잡혀 있다. 언제 그렇게 되었는지 기억도 나질 않는다. 어쨌든 불쾌해하는 것은 락씨이고, 술을 마시는 것은 전작 나이므로, 개의치 않기로 했다.

락씨는 술을 안 마신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안마시기로 했단다. 서른다섯이 될 때까지는 보통 성인의 주량으로 술을 즐겼다고 한다. 그런데 서른여섯이 되면서 갑자기 술맛이 없어졌다나. 특별한 계기도 없고, 뭐 끔찍한 술주정으로 망신을 당한 일도 없었다고 한다. 그저 술이 싫어졌다고 하는 락씨. 술을 좀 해야 사회생활 할 때 유리하다고 했더니, 자기는 사회생활을 하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지금 이렇게 우리 카페에서 요리사로 일하는 것도 일종의 사회생활이라고 대꾸하니, 그는 이상한 표정으로 날 쳐다보며 말했다.

“진심이야?”

물론 진심이었지만, 그냥 대화를 끝냈다. 락씨가 술을 못 마신다고 해서 나와의 사회생활에 무슨 문제가 될 일은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그건 확실했다. 락씨를 만난 건 카페를 열기 한 달 전쯤이었다. 그는 카페 맞은편 1층에서 서점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주로 미술서적이라고 했다. 문학이나 과학관련 서적도 있는 것 같았다. 다만 대중적이지 않다는 게 특징이었다. 그렇다고 딱히 마니아층을 위한 전문서적이 있거나 그런 것도 아니었다. 사실 조금 의아한 점은, 그것보다 그가 요리사 출신이라는 점이다. 이탈리아에서 요리학교를 나왔고, 한국에서 몇 년간 유명 호텔의 주방장으로 일했다는 경력과는 무관하게 레스토랑도 아닌, 그렇다고 요리전문 서점도 아닌 미술서적을 취급하는 서점을 열었다니. 참으로 극적인 락씨가 아닐 수 없다. 카페 내부 인테리어 공사가 한창일 때, 락씨는 몇 번 구경을 왔었다. 처음에 그는 별다르게 살가운 인사를 건네거나 하지 않았다. 심지어 눈인사도 없었다. 사람을 처음 보면 무언가 이미지가 보이거나, 아님 느껴지거나 간단하게 색채라도 떠오르는데 락씨에겐 아무것도 느낄 수 없었다. 그저 내 그림자에 오랫동안 머무는 날카로운 락씨의 시선만 느껴질 뿐이었다. 락씨는 사람을 바로 째려보는 게 아니라, 그림자를 응시한다. 그런 시선을 의식하게 만드는 사람은 이 세상에 락씨 밖에 없을 것이다.

하루는 불쑥 락씨가 카페로 들어와, 대뜸 요리사는 구했냐고 물었다. 우리 카페는 사실 요리사가 필요하지 않았다. 예약제로 손님을 받을 예정이었고, 하루에 두 세 명 정도만 받을 생각이었다. 커피와 차 그리고 간단한 샌드위치 정도만 준비하려고 했다. 물론 샌드위치는 내가 만들 생각이었고, 그 이상의 것은 무리였다. 더구나 따로 일할 직원을 구하겠다는 계획은 더더욱 없었다.

“요리사를 둘만한 부엌도 없는걸요.” 나는 되도록 정중하게 대답했다. 락씨는 내 말에 신경도 쓰지 않는 것처럼 성큼 카페의 문턱을 넘고 들어와, 한쪽 벽에 어정쩡하게 기대어 있는 나를 지나쳐 3평 남짓한 안쪽 부엌으로 들어갔다. 부엌은 부엌이지만, 그저 간단한 음식을 만들 수 있는 장소로 의도된 곳이었다. 냉장고, 가정용 오븐, 가스레인지, 그 위의 작은 환풍기, 검소하게 아담한 싱크대, 그리고 한쪽의 작은 창고가 전부였다.

“충분하군.” 심드렁하게 락씨는 말했다.

뭐가 충분하다는 것인지 의미전달이 불안하게 안됐다. 그가 충분해할 게 뭐가 있겠냐 싶은 심정이랄까. 나는 그저 샌드위치만 만들 것이라는 얘기와 함께, 카페의 성격을 간단히 설명해줬다. 그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혼자 즐기는 샌드위치는 충분히 아름다워야 하는데 말이야.”

내게 하는 말인지, 혼잣말인지 말끝이 조금 이상했다. 그때부터 락씨는 줄곧 말끝을 간단하게 마무리한다. 물론 내가 한 살 어리긴 해도. 그가 카페의 요리사가 된 후에라도 그렇다는 말이다.  결국 나는 락씨를 요리사로 채용했다. 그가 만든 충분히 아름다운 샌드위치는 무척이나 맛있었기에 후회할 일은 없었다. 그 주요한 맛의 원천이 살라미란 햄에 있었다는 것은 나중에 알았지만, 내가 재료를 사서 만들어도 그 맛은 절대 낼 수 없는 것이었다. 서점은 계속 운영한다고 했다. 운영이라는 말이 조금 걸맞지 않는 주인이긴 했지만 그래도 주인으로서의 욕심이라는 게 있다고나 할까. 아무튼 길하나 사이에 나와 그는 카페와 서점의 주인으로서 또는, 카페 주인과 요리사로서 함께 어울리게 되었다. 정말 그냥 어울리게 된다.

락씨는 평상시에는 서점에 있다가, 카페에 예약이 들어오면 그 날에 맞추어 요리를 준비하면서 일하기로 했다. 그가 카페에 있을 때 서점에 필요한 아르바이트생을 뽑기로 했는데, 그것도 좀 사연이 있다. 나는 락씨의 아르바이트생을 뽑기 위한 면접을 부탁 받았는데, 순전히 내가 무언가를 느낄 수 있다는 것에 착안하여 락씨가 생각해 낸 아이디어였다. 매큐란 아이가 그렇게 채용되었다. 면접 때 그는 조금 늦게 도착했는데, 락씨는 별로 개의치 않아 보였다. 나와 락씨가 서점 카운터에 서서 뭔가 캐내려는 듯 쳐다보는 상황을 견디는 것도 힘든 일임을 락씨가 감안한 것 같았다. 일단 내가 느끼기엔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