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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
2009/09/28

 

beyondcafe

온난한 이웃의 시로코

-My mild neighbor, Sirocco

      written by Beyondcafe

 

곤히 잠든 강은 왼편에서 오른편으로

  마른장마라고 뉴스에서 그랬던 것 같다. 여름의 한복판은 믿을 수 없을 만큼 끈적끈적하고 어지럽다. 요즘 부쩍 어지러운 것은 모두 이 더위 탓이겠지만, 나는 영양제 몇 알 더 먹는 것으로 체력을 보충한다. 월요일 오후 1시. 입맛이 없어 아침부터 아무것도 먹지 못했지만 오전 내내 카페 안 이곳저곳을 청소했다. 매일 빼먹지 않고 하는 일이지만 오늘은 유난히 뿌듯한 마음이다. 가지런하고 단정한 공간이 유지되고 있어서 다행이랄까. 이젠 별개 다 흐뭇하다. 오늘 예약을 확인한다.  손님은 2시에 오기로 되어 있다. 문 앞 예약 칠판에 예약손님의 닉네임과 시간을 분필로 천천히 적었다. 늘 그렇듯 보라색 분필로 꼼꼼하게.

< 2:00 pm for 제니>

귀여운 애칭이다. 제니. 예약 시에는 분명 실명을 확인하지만, 일부러 닉네임을 따로 부탁한다. 그리고 예약된 날에는 칠판에 그 닉네임을 써둔다. 락씨의 말처럼 자신 스스로가 결정할 수 있는 이름을 갖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락씨는 그것이 자신만의 문화 만들기라고 하겠지만, 나는 그것보다 그저 불러지길 원하는 이름을 자신이 결정한다는 것이 의외로 의미가 크다는 점을 공감하는 정도이다. 그게 공식적이면 더 좋지 않을까 싶었다. 꼭 ‘홍길동’같은 이름이 칠판 위에 적혀질 필요는 없으니까.

그나저나 갑자기 허기가 진다. 락씨는 오늘 들리지 않을 테고, 이틀에 한번 꼴로 락씨가 만들어 두는 치즈케이크는 벌써 질린다. 아니, 벌써가 아니지. 도대체 왜 늘 치즈케이크인지. 두 번 다시 케이크 만드는 일은 하지 않겠다는 다짐이 무너지려고 한다. 어쩌면 내일이라도 당장 내가 초코브라우니를 만들어 락씨의 코앞에 드밀지 모른다.

  2년 전. 크리스마스이브. 나는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다. 며칠 전부터 종이에 적어두고 외우다시피한 케이크 레시피를 입속으로 중얼거리며, 뿌연 밀가루 더미와 씨름했다. 나는 J의 전화를 계속 기다리고 있었다. 일주일 동안 아무 연락도 없는 그녀 때문에 그해 겨울밤은 모든 것이 다 생소했다. 밤 12시. 이미 크리스마스이브는 지나갔고 TV에서는 연신 고요한 밤을 외치고 있었다. 나는 조금 지치고 슬펐다. 그날만큼은 침대 속에서 휴대폰만 부여잡고 있기가 너무 힘들었는지 모른다. 어쩌면 그렇게 끈덕지게 전화를 기다리면 J가 전화를 걸고, 나는 감격스럽지만 짐짓 태연하게 케이크를 굽고 있노라고 대답할 수 있을지 모를 일이라 생각했는지 모른다. 그땐 그런 생각만이 날 위로할 수 있었다. 사서함에 열 번 이상 내 초연함을 가장한 간절함으로 메시지를 남겼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었다.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그런 일은 정말 잔인하고 어리석은 장난 같았다. 나는 케이크 만드는 일을 중단하지 않았다. 주걱으로 계란 흰자를 저으며 숫자를 셌다. 백 하나, 백 둘, 백 하나, 하나… 거품은 충분히 부풀었다. 빛나는 얼음 언덕과의 조우. 나는 여기에 달걀을 조심스럽게 섞고 설탕을 듬뿍 넣은 후 체진 밀가루를 넣었다. 모든 과정을 마친 반죽은 빵틀에 담아 미리 예열된 오븐에 넣었다. 이젠 기다리기만 하면 되는 것인가.

  구워지고 빵의 고소한 냄새는 현기증 날 만큼 강렬했다. 생크림을 그 위에 올리려는데 자꾸 흘러내렸다. 크림이 한쪽으로 치우쳐져서 엉뚱한 방향으로 뭉치기만 했다. 보기흉한 중절모자처럼 삐딱해 보였다. 빵을 충분히 식혀야 하는 것을 나는 깜빡 잊고 있었다.반으로 자른 딸기 조각을 얹기도 애매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더 이상 없어 보였다. 케이크를 한쪽으로 치우고 묵묵히 뒷정리를 하기 시작했다. 새벽 4시였다. 플라스틱 볼과 주걱을 씻고 달걀 껍데기를 한데 모아서 봉투에 담고 밀가루 봉지는 바람을 뺀 다음 집게로 입구를 오므렸다. 행주를 짠 후 개수대와 가스레인지 옆에 붙은 밀가루를 닦았다. TV를 끄고 테이블 위에 있는 와인 잔의 와인을 마저 마신 후, 잔은 흐르는 물로 씻어 선반뒤에 두었다. 나는 마지막으로 냉동실 문을 열고, 케이크가 담겨진 접시를 안으로 밀어 넣었다. 돼지고기 덩어리를 지지대 삼아 되도록 넘어지지 않도록 주의했다. 케이크는 간신히 버티고 있는 듯 위태로워 보였고, 나 역시 그랬다. 그때까지 조용히 소파 위에 버려져 있던 휴대폰을 노려보았다. 차라리 전원을 꺼두지. 더 이상 메시지를 남길 수도 없다나는 멍하니 침대로 돌아와 누었다. 다음날 오후 늦게까지 나는 일어나지 않았다. 그때 이후로... 케이크는 잊어버린 것 같다.

   제니… 오늘의 손님이 드디어 올 시간. 에어컨을 약하게 틀었다. 그녀가 추가로 주문한 것은 오로지 망고 스무디. 음악은 아무래도 상관없다고 했다. 다만 한 시간에 한번 정도 ‘ Cry me a river'를 틀어달라고 했다. 그것도 조금 신경 쓸 일이여서 나는 전자레인지 옆 노트북에 (나는 전자레인지 옆에 노트북을 둔다) 음악플레이어를 열고, <제니>라는 폴더로 미리 옮겨다 놓은 파일들을 배열했다. 3시간동안, 그러면 세 번 정도 그 노래가 나와야 하는 것이다. 시간을 계산 한 후, 적절한 순서로 음악을 배치했다. 이를테면, Amy winehouse의 ‘You know I'm not good' 다음에 그 곡이 한 번. Pink의 ‘I'm not dead'후에 또 한 번, 그리고 마지막으로 Maroon5의 ‘Woman' 다음으로 그 곡이 나오는 뭐 이런 순서말이다. 이렇게 나머지 음악들은 제니가 말 한대로 상관없이 들어갔다. 그때 마침 그녀, 제니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나이스 헤어 컷. 잘 다듬어진 짧은 머리가 그녀를 돋보이게 했다. 그런 머리를 소화한다는 것은 행운이리라. 20대 후반으로 보이는 그녀는 헐렁한 흰색 셔츠에 검은색 미니스커트를 입고 있다. 함께 입은 차가운 느낌의 회색 레깅스가 크림색 스니커즈와 잘 어울린다. 망고 스무디는 그녀의 탁월한 선택인 듯.  제니는 살짝 웃으며 내게 인사한다.  예약한 손님이 이 공간에서 혼자 시간을 보낸다고는 하지만 사실은 나도 늘 그 공간에 함께한다. 그래도 그들에게는 그 시간이 혼자라고 여겨지겠지만 말이다. 카페에 들어서면, 왼편 유리 창문에 가깝게 넓은 원목 테이블과 긴 나무 의자가 있고 한족 벽면에는 액자가 여러 개 걸려있다. 그리고 맞은편으로는 책장을 배경으로 테이블 두 개와 소파 네 개가 각각 서로 짝을 이루어 마주보고 있다. 그리고 입구 오른쪽에 내가 늘 앉아 있는 바가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제니는 넓은 원목 테이블을 선택했다. 그렇지만 유리창을 향해 앉지 않고, 나를 바라보는 방향으로 창을 등지고 앉았다. 낮은 선반 형식으로 등받이 없이 창가에 기댈 수 있으며 밝은 산호 빛의 쿠션 세 개가 나란히 자리 잡은 곳이었다. 이젠 내가 망고 스무디를 내갈 차례.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