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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순히 멀리 보이는 지평선의 아득함이, 늘 그렇듯 파란색이라고 해서 안심할 것도 아니다. 당연히 있어야 할 물거품을 토대로 어느 지점까지 바람은 불고 있지만, 아무래도  초록색의 압생트처럼 청초한 바다는 ....글쎄..뭐랄까.   고흐의 그림을 마주하고 있으면 이상하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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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2010/09/08

beyondcafe

 

 

온난한 이웃의 시로코

-My mild neighbor, Sirocco

      written by Beyondcafe

 

요란스럽지 않은 링귀네

 

  어제 밤에는 비가 잠깐 내렸던 것 같다. 잠에서 깨어 축축한 방안 공기를 확인하며 가만히 귀를 기울이니, 빗방울 소리가 희미하게 울리고 있었다. 소나기의 환영인가 싶어 잠시 중얼거렸는데 실제로 비가 내린 것이다. 그건 오늘 아침, 락씨의 아침인사 때문에 알았다.

어젯밤에 비가 왔어.”

락씨는 이른 아침과 잘 어울리는 얼굴로 카페 문을 열고 들어와 내게 말했다. 나는  다시 내가 렘수면에 빠진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을 아주 잠깐 했다.

그렇구나. 꿈이 아니었군요.”

안녕하세요라는 상투적인 인사로 시작되지 않는 아침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그나저나 오늘 같은 날에는 그냥 카푸치노로 목욕하고 싶네요.”

소파의 먼지를 털어내던 내가 고개를 들어 말했다. 가벼운 탄식마저 무디게 들릴 정도의 열정으로 말이다. 아직 한여름이지만 왠지 오늘은 낯선 서늘함이 카페 안으로 조용히 드리워져 있는 느낌이 든다.

저기, 꽤 유감스럽지만 말이야, 한번 해보는 것도 나쁘진 않겠어.”

억지로 구겨 넣은 종이봉투 안의 얇은 달력 뭉치 같은 표정으로 락씨가 말한다. 그의 말대로라면 못할 것도 없겠지만, 12시에 예약 손님이 있다. 여유가 없을 때는 일단 참아야 한다. 우선순위라는 것이 내게도 있으니까.

해산물 좀 사가지고 올게.”

저기, 12시에 예약 있어요!”

알고 있어. 그래서 사러 가는 거야. 싱싱한 오징어가 필요해.”

  락씨는 얌전하고 계획성 있는 주부의 몸가짐처럼 가벼운 발걸음으로 어딘가로 향했다. 그가 어디서 그 훌륭한 재료들을 값싸게 구입하는지 알고 싶지만, 분명 알려주지 않을 게 뻔하다. 영수증만으로 내가 다 찾아낼 수 있다고 믿지 않는 것이 확실하다. 오늘 손님은 해산물 라구 요리를 주문했다. 그게 뭔지는 정확하게 모르겠지만 말이다. 음악은 특별하게 필요 없다고 했는데, 내가 생각하기에는 직접 CD를 들고 올 것만 같다. 음료수도 특별한 주문이 없다. 사실, 커피도 시키지 않는 손님에게서는 너무 냉정한 분위기가 풍겨서 어째 좀 딱딱하다. , 취향의 문제겠지만 말이다. 그렇다고 그런 손님에게  커피 한 잔쯤은 말랑말랑한 분위기를 위해서 시키시죠.’ 라고 말할 수도 없다. 그러기엔 내가 너무 얌전하다. 너무 얌전해서 탈이지.

!”

난데없이, 정말 어리둥절할 정도로 뜬금없이 매큐 녀석이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와 나를 불렀다.   점점 녀석의 언행이 락씨의 엉뚱함을 닮아가고 있는 것 같아 눈썹이 따끔거리게 불안하다.

, 뭐야? 서점은?”

봤어요?”

?”

무지개요! , 무지개 봤어요. 일곱 빛깔 선물!”

. 골치 아프게 이 녀석이 아침부터 너무 상기되어 있다. 도대체 무슨 일일까.

서점이 요 앞이긴 하지만, 지금 넌 여기 있으면 안 되는 거잖아.”

나는 눈살을 조금 찌푸리며 답했다. 매큐는 전혀 상관없다는 듯 말했다.

괜찮아요. 다른 사람 있어요.”

근데, 왜 매큐 얼굴에서 빛이 나는 걸까.

다른 사람? 누구?”

, 아무튼 형! 오늘 저 무지개 봤다는 것, 기억해주세요! 저 가요!”

  녀석이 그렇게 들뜬 것은 처음이다. 아마 태어나서도 처음이 아닐까. 카페 문을 잠그고 서점에 들려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참았다. 뒷모습까지 신이 나 뛰어 나가는 매큐를 물끄러미 쳐다볼 뿐이다. 그사이에 누가 들어올 것도 아니겠지만, 그래도 잠깐이라도 아무도 없는 카페를 누군가가 불쑥 들어온다면 내가 언짢을 것 같다. 직원 없는 카페 주인의 설움이 바로 이런 게 아닐까. 아니 뭐, 락씨는 말해봐야 소용이 없으니까. 그런데 도대체 그 다른 사람이란 누굴 말하는 걸까. 나도 모르게 사람을 새로 뽑았다는 말씀인데. , 그나저나 무지개를 어디서 봤다는 거야. 아주 어렸을 때 빼고는 나도 요새는 통 본 적이 없다. 굳이 보겠다면, 아주 맑은 날에 호스를 수도꼭지에 연결해서 허공을 향해 연신 뿌려대면, 뭐 무지개 끝자락이라도 언뜻 보이겠지만 말이다. 이럴 때는 정말 난감하다. 이야기를 꺼냈으면, 뭔가 상대가 납득할 정도로는 설명을 해줘야 하는데, 저렇게 결론만 말하고 가버리면 나 같이 공간이동이 자유롭지 못한 사람은 궁금해 아주 죽는다. 문을 잠그고 바로 앞에 있는 서점을 가보는 거야 어렵지 않겠지만, 굳이 그러고 싶지 않았다는 거다. 맞다. 이건 공간의 문제가 아니라, 내 의지의 문제일 것이다.

  의지의 문제를 꺼내보니, 사실 그렇게 간단하면서도 쉬운 일을 너무 어렵게 꼬아가면서 스스로의 발을 묶은 적이 너무나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요즘 내가 친구들과 약속도 잡지 않고 혼자 틀어박혀 있는 것도 그 범주에 들어갈 것이다. 늘 카페 핑계를 대며 전화로 간단히 안부를 주고받고 있지만, 한 달에 한번 정도인 모임에 못나갈 정도는 아니다. 나는 카페를 책임지는 사람일 뿐인데, 점점 카페 그 자체가 되어서 움직이지도 않고 누군가를 불러들일 생각만 하고 있다. 그렇다고 이런 예약제 카페에 선뜻 오겠다는 친구들도 없으니 나로서는 난감할 뿐이다. 그런데 그게 끝이다. 난감하다는 기분으로 끝이지, 더 앞서나가질 못한다는 얘기다. 알고는 있지만 역시 거기까지이다. 지금 또 내가 만들어내는 핑계거리는 이 여름이 너무 덥다는 것뿐. 차도 없는 내가 에어컨을 어깨에 메고 다닐 수도 없고, 한반 중에 돌아다니는 것은 더더욱 유쾌하지 않으니 내 의지의 문제에는 기후문제까지 겹쳐져 여전히 해결될 가망이 없어 보인다.

  해결기미가 없는 생각은 그만 접고, 바에서 나와 유리문 가까이 다가갔다. 건너편 서점을 지켜보고 있지만,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매큐와 그 의문의 사람은 저 공간 어딘가에 서로 사선이나 직선방향으로 자리를 잡고 서서 담소를 나누고 있을지 모른다. 어쩌면 카운터에 나란히 서서 이제 막 새로운 기기의 탄생을 기념하는 것처럼 들떠서는 카드기 사용법에 대해 논의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다만, 내 눈에만 안 띌 뿐이겠다. , 이건 정말 의지의 문제인가. 당장 쳐들어가 그 미지의 누군가를 볼 것인가!

  어제는 전혀 뜬금없이 KJ의 안부를 전했다. K 따위가 그런 얘기를 전할 이유가 뭐가 있을까라는 생각만 잠시 들었지만, 그녀가 결혼했다는 얘기는 아주 확실하게 머리에 전달되었다. 아니, 내 가슴에 말이다. 내게 갑자기 전화를 건 이유가 바로 J의 결혼 소식 때문이며, 좀 더 냉정하게 말하자면 그 소식을 들은 나의 반응이 궁금해서라는, K의 의도는 아주 뚜렷해 보였지만 생각처럼 초연할 수가 없었다. 제대로 걸려 들은 사람처럼 우물쭈물하며 몇 초간 굳어진 내 흐린 기운을 그대로 K에게 전달하고 말았다. 억울했지만, 그럴 수밖에 없었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일어나는 수천 가지의 일들 중에 그건 정말 겪고 싶지 않은 일들 중의 하나에 불과하다. 내 신경세포들의 자연스러운 움직임과 반응은 그렇게 의지의 영역과는 별도로 나를 벗어나버린다. ‘아차하는 순간보다 더 빠르게, 어쩌면 빛의 속도보다 더 영민하게 움직인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더 이상 그런 군더더기 같은 충격에 빠져있을 수만은 없었다. 내 결론은 그러했다. ‘결혼한대보다 그녀가 결혼했다라는 문장은 훨씬 나를 자유롭게 한다. 내가 관여할 수 있는 부분이 그만큼 없다는 뜻이 되니까 말이다. 그러나 한동안 멍한 기분으로 시간이 길게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그것까지는 누구도 탓하지 않으리라. K와 통화한 것이 바로 몇 초전의 일과 같다. 밤이 지나고 아침이 찾아왔지만 내겐 변화 없이 그 부분만은 언제나 새로 고침처럼 또렷하다.

  한 시간쯤 되었을까. 전혀 움직이지 않고,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으며 그 어느 것도 제자리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그리고 그녀가 들어왔다.

나는 어쩌다가, 문 앞의 예약손님을 알리는 칠판에 그녀의 이름을 써놓지 않았던 것일까!

변명을 하자면, 매큐의 무지개와 낯선 서점의 손님 때문이었고, 더 강력하게는 J의 소식 때문이리라. 거기다가 그녀는 한 시간이나 일찍 도착했다.

, 어떻게 오셨나요?”

시로코에요. 반가워요.”

어느 손님도 내게 첫 인사로 반갑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녀가 처음이다.

네에. 근데 일찍 오셨네요. , 아직 11시인데식사도 준비 안 되었고.”

그녀는 내 말은 신경 쓰지도 않으며, 집을 보러 온 사람처럼 카페 안을 세심하게 쳐다보았다. 나는 왠지 긴장이 되어, 청소를 더 깨끗하게 했어야 했나 싶어 땀이 베인 손바닥을 냅킨으로 닦기까지 했다. 누군가 처음 만나면 당연하게 느껴지는 무언가가 있어야 했는데 그녀에게는 아무것도 느낄 수 없었다. 락씨와 마찬가지로. , 그렇다고 더 불안했거나 재미없거나 그랬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녀가 언제까지 저 매서운 눈초리로 카페를 쏘아볼 것인지가 궁금했을 뿐.

그럼, 좀 앉으시죠. 식사는 예약된 시간에 준비해 드릴게요.”

그녀는 전혀 망설임 없이 테이블의 나무 의자를 하나 들어서는 내가 있는 바의 앞에다 놓고 나와 마주보며 앉았다. 정말 거리낌 없이 말이다. 굳이 안 될 이유는 없었지만, 갑자기 내가 무슨 칵테일 바의 직원이 된 것 같은 착각이 일었다. 그 의자가 그렇게 가볍나 새삼스럽기도 하고.

코크 언더락이요.”

나는 또 이게 무슨 말인가 싶어서, 잠시 침묵했다. 이런 침묵은 어색해서가 아니라 순전히 말을 못 알아들어서 생기는 습관 같은 것이다.

코크 언더락.” 나는 조금 웅얼거리다가 그녀를 쳐다보았다.

, 저희는 탄산음료는 없어요. 음료수는 예약사항에 없었어요.”

그럼, 언더락 만요.”

침묵은 또 한 번 나를 시험하듯 스쳐지나갔으나, 이내 정신을 차리고 나는 유리잔에 얼음을 넣고 물을 살짝 담가 그녀에게 내밀었다. 그녀는 표정의 변화 없이 유리잔을 들고서는 또 다시 바 안쪽의 이곳저곳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음악은 어떻게?”

그냥 아무거나 틀어주세요.”

아하. ‘아무거나라는 것은 정말 고난도의 주문이라는 것을 그녀는 모르는 것인가. 이래서 카페의 주인을 한 번쯤은 해봐야 되는 것이리라. 소개팅에서 아무거나를 연발하면 그건 당신은 정말 시시해요와 같은 의미라는 것을 뼈저리게 알고 있는 나로서는 은근히 거슬리는 단어가 아닐 수 없었다. 더구나 그렇게 말하는 본인에게 어떤 취향도 없다는 것은 말도 안 되기 때문에, 이내 이쪽에서 순진한 마음으로 정말 '아무거나'선택하여 내놓는다면 늘 쏘아보는 눈초리를 감당하거나, 아니면 자리를 떠나려는 상대의 엉거주춤한 표정을 구경하는 참사가 벌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니 제발 아무거나 라는 말로 상대방을 어지럽히지 않았으며 좋겠다. 이건 카페주인으로서도 그렇지만, 평범한 인간으로서의 요구사항이다.

 나는 짐짓 태연한 척하며, 실은 그 아무거나는 틀어주지 않을 작정으로 가만히 서 있었다. 내 고유의 공간을 빼앗긴 점도 왠지 괘씸했지만, 한 시간이나 일찍 방문한 것도 당황스러웠기 때문이었다. 이건 그녀가 깜찍하게 아름답다고 해도 전혀 변하지 않는 감정이었다. 솔직히 그녀는 정말 깜찍하게 아름답다. 보통 깜찍하다는 형용사는 아름다움이란 단어와 잘 어울리는 것은 아니다. ‘예쁘다라는 말과 어울려야 된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믿고 있다. 그런데, 그녀가 나타나서 깜찍하게 아름다운 것이 어떤 것인지 몸소 보여주고 있다. 아무렇게나 틀어 올려 묶은 머리조차 세심하게 공들인 것처럼 근사하다. 선명한 복숭아 색 블라우스가 주는 알 수 없는 감흥까지 더해져서 그녀를 보고 있자니 약간 현기증이 날 것 같다. 뭔가 특별한 화장으로 공을 들인 것 같진 않은데, 매끈한 얼굴선이다. 거기에 유난히 붉은 볼이 지나치게 신경이 쓰인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시선이 자꾸 그쪽으로 간다. 도대체 저런 깔조네같은 얼굴빛은 뭐란 말인가. 내가 이렇게 대책 없이 이상한 생각으로 혼자 산으로 갈 때쯤 그녀가 말을 꺼냈다.

여긴 아.무.거.나. 안 틀어주나 보네요. 자요, 그럼 이거 틀어보세요.”

가방에서 조그만 무언가를 꺼내 내게 내밀었다. 자세히 보니 USB.

이게 뭔데요?”

유에스비요. 컴퓨터에 연결하면 파일이 나와요. 그 음악을 플레이하시면 돼요.”

그게 뭔지는 나도 물론 안다. 내가 묻는 말은 그게 아니지 않는가!

무슨 음악인데요?”

몰라요. 그냥 누가 들어보라고 줬어요. 틀어보면 알겠죠.”

시로코란 그녀는 귀찮다는 듯이 슬쩍 손등을 긁으며 말하고 있다. 나는 잠자코 그걸 노트북에 연결했다. 여러 개의 MP3파일이 있었다. 파일명을 보니 대충 무슨 음악인지 알 것 같다.

맘보! 혹시 맘보 음악 아세요? 라틴음악으로, 쿠바 출신인 페레즈가 1940년도 중반에 처음 세상에 알렸죠.”

그녀가 나를 쳐다본다. 흡사 UFO에서 방금 내려 이봐, 난 외계인이라고 해라고 말하는 초록 생명체를 바라보는 듯 떨떠름한 표정이다.

일단 듣죠.”

  그녀는 꽤나 복잡한 표정으로 내게서 눈을 떼지 않으며 짧게 말했다. 영화 <자유부인>의 댄스홀 장면이 생각난다. 억압된 자유의지의 표현까지는 모르겠지만, 페레즈가 선보이는 맘보 음악을 듣고 있으면 자꾸 영화와 겹쳐져 개미와 베짱이가 머릿속에 그려진다. 어느 결혼 피로연에서 보타이를 한 불편한 표정의 개미가 와인을 마시고 있는 가운데, 화려한 색상의 무대의상을 입은 베짱이가 보란 듯이 무대에 나와 호탕하게 웃으며 맘보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고 있는 그런 장면 말이다. 무슨 영화의 한 장면처럼 아주 선명하고 현실적이게 떠오른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다. 갑자기 맥주 두 병이 마시고 싶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