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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제가 아버지에게 혁대로 맞을동안 나 역시 이불속에서 그 아픔을 고스란히 느끼며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내가 브라질에 있었다면 그 아버지는 그날이 장례식이었을 것이다. 제제가 밍깅뉴라는  라임오렌지 나무와 정신적인 교감을 나눌 동안, 나 역시도 학교앞 화단의 이름모를 풀들과 매일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그것이 비록 오렌지만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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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2009/09/12

온난한 이웃의 시로코

-My mild neighbor, Sirocco

      written by Beyondcafe

 

 

episode. 오늘, 그리운 바다에는 카페가 없다

  바닷물은 어느 한쪽이랄 것도 없이 천천히 유리문을 스쳤고, 그녀는 미동도 없이 유리문 앞에  서 있었다. 나는 막 비엔나커피를 만들기 위해 기계에서 커피를 뽑고 있는 중이었다. 그녀는 조용히 문을 열고 들어와 푸른빛 회색의 소파에 앉은 후, 나를 쳐다보았다. 유리문 밖. 바닷물이 점덤 더 가까이 다가왔다.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물의 출렁임은 까닭 없이 벅찬 것이었기에 나는 잠시 현기증이 일었던 것 같다. 불안감은 그 다음의 도미노 같은 현상. 마치 유리창 이음새로 바닷물이 비집고 들어와, 카페 안에서 넘실거릴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그런 어처구니없는 상상도 꽤 오싹한 것이구나 싶었다. 그녀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카페가 아늑하네요.”

메마르면서도 울림이 있는 목소리였다. 나는 되도록 동요되지 않은 표정으로 다가가 탁자위에 커피 잔을 내려놓았다. 옅은 분홍색 잔으로, 잔을 잡으면 손안이 포근해지는 영국제였다. 음악은 이미 틀어두었다. <Songs without words>이란 앨범이었다. Track 4번부터 틀어달라는 주문을 잊지 않았다. 앨범 제목과 같은 제목의 곡이었다. 나는 늘 예약 10분전에 음악을 틀어놓는다.   문을 열고 들어와 자신이 원하던 음악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면 어쩐지 더 편안한 느낌이 들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녀가 카페에 들어왔을 때도 ‘songs without words'의 중간쯤이 흐르고 있었다. 이 방식을 싫어했던 손님은 아직까지 없다.                                

   그녀는 커피 잔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다. 마치 지금 자신 앞에 존재하는 유일한 무엇이     ,바로 그 커피 잔인 것처럼 경이롭게 말이다. 신중하면서도 순진한 시선이다. 트랙은 넘어가 Michael Kamen의 ‘Everything I do’가 흐른다. 귀에 익은 피아노연주와 함께 카페 안은 차분하면서 신비로운 분위기로 점점 더 느긋해져간다. 그녀는 비엔나커피를 꼼꼼하게 마셨다. 말 그대로 꼼꼼하게. 리필로 커피를 내올 때는 으레 아메리카노를 준비하지만, 이번에는 그대로 비엔나커피를 만들었다. 수고스러웠지만, 잔을 가져와 씻은 후 따뜻하게 데우고 다시 커피를 내갔다. 그녀가 살짝 미소짓는 모습을 보며 나는 바의 안쪽 작은 나무 의자에 앉아 샤오춘레이의 <욕망과 지혜의 문화사전, 몸>을 펴들었다. 의자 앞에는 쇼케이스가 있어 몸의 절반이상이 가려지는 알맞은 공간이었다. 쇼케이스 안에는 락씨가 오늘 아침에 만든 치즈 케이크가 들어있었다. 대게 우리 카페에서는 그게 전부다.

  유리창 밖 바닷물이 조금 잠잠해진 것은 그렇게 내가 책의 한 페이지를 넘길 때쯤이었다. 음악 소리에 내내 묻혀 있었지만, 문밖의 파도소리는 계속 지속적인 리듬을 보였다. 하지만 어느 순간 바다는 그저 얌전히 주인을 기다리는 강아지처럼 그녀를 향해 조용히 물결치고 있었다. 반면에 그녀는 한 번도 밖을 쳐다보지 않았다. 간간히 고개를 들어 오른쪽 책장의 책들을 쳐다보았지만, 책을 꺼내지는 않았다. 마치 교무실 밖에서 선생님과의 면담을 기다리는 학생처럼 그녀는 약간 긴장한 듯 보였다. 사실, 나는 누군가에게 질문을 직접적으로 하는 편은 아니다. 하지만 그녀에게만큼은 자연스럽게 말을 건넨다는 것이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더구나 저렇게 그녀의 바다가 현관문에서 무슨 답을 기다리는 것처럼 침묵하는 시선을 보내오는 이 상황에서 자연스러울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마침 들려오는 음악의 전주부분은 극적인 나의 의지에 힘을 실어주었기에 (음악으로 용기를 얻는 것도 때론 유용한 일이다) 가능했을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저...... 밖에 있는 바다는 함께 데리고 오신 건가요?”

흠칫 놀라는 그녀의 옆모습이 파리하다. 그녀는 반쯤 입을 벌리고, 뭔가 탄식에 가까운 눈빛으로 커피 잔을 노려보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곰곰이 무언가 생각한 후 고개를 천천히 돌렸다.

 “낯선 것은 흥미롭지만, 그 만큼 대가가 필요하죠."

그녀는 천천히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그 따뜻한 기운에 힘이라도 얻은 듯 두 손으로 잔을 힘주어 감싸고 있다.

  나는 별 대꾸 없이 의자 옆 작은 냉장고에서 기네스 캔을 하나 꺼냈다. 선반에 있던 맥주잔에 천천히 맥주를 따랐다. 쉽지 않은 사람과 마주앉아 얘기할 때만큼은 완벽하게 맛있는 기네스를 위해서 말이다. 기네스는 막 나온 에스프레소처럼 진한 향을 품으며 서서히 거품을 만들어냈다. 오늘은 조금 힘들게 시작하는 군. 혀끝부터 가득하게 퍼져오는 기네스의 풍성함에 긴장을 조금 풀며 그녀를 쳐다봤다. 때때로 우문현답보다 더 현학적인 대화로 손님과 진을 뺄 때가 있다.    아예 모른 척 하면 그만이겠지만, 바다를 데리고 온 사람은 그녀가 처음이었고, 내 질문에 저런 애매한 답변을 던진 사람도 역시 그녀뿐이었다. 나는 조금은 상쾌해진 내 기분을 자랑이라도   하듯, 경쾌하게 다시 물었다.

 “그럼 바다에는 낯선 것이 뭐가 있나요?”

그녀는 돌연 소파에서 일어나더니, 그녀에게 더 잘 어울릴 것 같은 옆 나무 의자로 옮겨 앉았다. 그녀를 정면으로 마주하자 어디선가 건들바람이라도 부는지 내 귓가에서는 무언가 가늘게 스쳐지나가고 있다.

 “음…….바다에는, 비엔나커피가 없어요. 그리고 바다에는 책도 없고, 설탕도 없고, 슈퍼마켓도 없고, 자동차번호판도 없죠. TV도 없고, 선크림도 없으며, 시베리안 허스키도 없어요. 아, 만년필도. 네, 그것도 없죠. 그렇게 없는 것들을 모두 빼면 그 나머지는 분명 낯설겠죠. 그 낯선 것들이 바다에 있어요. 네, 있을 거예요. 아마도.”

상품설명서를 읽듯 또박또박한 그녀의 말투. 분명 아까와는 다르게 그녀의 목소리는 마른 모래처럼 무거운 힘이 들어가 있다.

 “그럼 그 바다에 당신은 있나요?”

나는 체념하듯 빠르게, 그렇지만 정말 궁금한 것을 애써 참으려는 듯 무심하게 아까의 책을 덮으며 물었다. 3페이지 정도는 더 읽을 수 있을 것 같은 시간이 흐르고, 그녀가 대답했다.

 “아니요. 저는 아직 없을 거예요.”

내가 생각하는 바다에는, 근사한 요트위에 머나먼 태양이 그림처럼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이름도 모르는 여행지의 관광객처럼 외로운 무인도가 저만치에 떠 있다. 바다와 연상되는 모든 것들은 이처럼 모두 수면위에 존재하는 것들이다. 그런 이미지의 형성에는 내가 선별해낸 것보다, 선별되지 않으려 했던 것들. 그러니까, 그들의 의지가 더 작용했을 것이다. 솔직하게 바다 속은 조금 무섭다. 고여 있는 물의 안쪽을 들여다보는 일은 정말 아찔한 일이다. 그것이 욕조에 받아 놓은 투명한 물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고여 있는 물이 내게 낯선 대상은 아니다. 무서운 것과 낯선 것은 다른 문제이니까. 그녀의 말처럼 낯선 것은 흥미롭다. 그렇지만 어떤 대가가 필요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어쩐지 그녀가 지금 얘기한 것들은 오히려 낯설지 않은 범주에 들어가야 옳을 것 같다. 바다위의 시베리안 허스키와 슈퍼마켓 중에서 어느 것이 더 낯설지는 좀 더 생각해봐야 하겠지만, 그것들을 제외한 다른 것들이 더 낯설다면...... .가만,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다. 그녀는 ‘아직’이라고 말했다. 아직 자신이 바다에 없을 것이라면, 곧 있을 것이라는... 분명 그런 의도가 아닌가. 어쩌면 바다에 있어야 할 그 수많은 항목 중에, 그녀가 스스로를 포함시키려 할지도 모를 일이다.   그것도 ‘아직’이라는 단어가 주는 기대감까지 함께 말이다.

  그녀는 이미 답을 가진 듯 단호하게 보인다. 다시 소파로 돌아가 아까의 그 긴장된 자세를 유지하며 음악을 듣는 그녀. 걱정스럽다. 늘 그렇듯 남의 일에 끼어드는 것은 골치 아픈 것임이   분명했고, 제멋대로 감정이 섞여 뒤죽박죽 엉망이 되었던 예전의 일들이 여전히 나를 괴롭히고 있다. 그래서 더 조심스러운 것인지 모른다. 그리고 더 난처한 일은, 그녀의 답이 무엇이든 간에 나는 남은 1시간 동안 그녀의 마음을 바꿀 힘이 없다는 것이었다. 다만 확실한 것은, 지금 그녀가 카페에서 비엔나커피를 두 잔째 마시고 있다는 것이고, 여전히 바다는 저 문밖에서 조용히 파도치고 있다는 사실이다. 영원히 깨지지 않을 진리처럼 분명하고 실제적이다. 결국 나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기로 했다. 이런 상황에서 아무것도 모를 그녀에게, 아니 아무것도 모르기로 작정한 그녀에게 내가 불쑥, '당신은 바다에 있을 필요가 없습니다. 아직이 아니라 앞으로도 영원히요.'라고 말한다는 것은 정말 너무 이상하고 어색하지 않은가. 또, 내가 너무 앞서서 생각하는 것일 수도 있었다. 물론 그렇게 생각해야 나 혼자 편한 일이었지만 말이다. 하여간 나중에 생각해보니 그건 조금 비겁한 일이었고,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했다.

  시간은 천천히 흘렀다. 아무 말도 없이, 메마른 보풀처럼 앉아 있는 그녀를 앞에 두고서 나는 조금 울적해지려고까지 했다. 그녀는 때때로 꼭 다문 입으로 무언가 속삭이는 듯했고, 그럴 때마다 바다는 조금 더 깊은 폭으로 출렁거렸다. 오후의 잔잔한 어둠으로 긴 원목 테이블위의 조명은 뚜렷한 명암을 드러냈다.  카페안의 공기도 그만큼의 변화를 보이려고 할 때쯤, 그녀가 서서히 몸을 일으켰다. 그녀는 이쯤이면 되겠다 싶은, 아까와는 현저히 다른 부드러운 표정이었다.     우리 카페에는 시계가 없다. 물론 부엌과 내가 지내는 방에는 있지만, 카페내부에는 일부러 시계를 두지 않았다. 손님들이 시간에 쫓기어 시계를 흘끔거리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저 궁금하면 내게 물으면 되는 것이었다. 그녀는 예약 시간을 20분정도 남기고 일어난 셈이다. 6시 40분.    천천히 다가온 그녀의 손에는 커피 잔이 쥐어져 있었다. 조심스럽게 잔을 바의 선반위에 놓았다. 가까이에서 보니 그녀는 생각보다 어린 사람이었다. 단정한 이마의 고운 살결이 유난히 그녀를 어려 보이게 한다.

 “이 커피 잔…제가 살 수 있을까요?”

분홍 잔의 매력은 이런 상황에서도 그 빛을 잃지 않는 것일까. 하지만 사겠다고 대뜸 물은 손님은 그녀가 처음이기에 조금 놀랐다. 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솔직히 말해서, 고민되는 일이었다. 그녀는 말하지 않아도 내 맘을 알겠다는 듯 살짝 웃어보였다. 어쩐지 미안한 마음에 그녀에게 조용히 말했다.

 “다음에 또 오시면, 그땐 제가 드리죠.”

조금 유치한 변명이었지만, 나쁘진 않았다. 그녀는 내 눈을 쳐다보았고, 지금도 잊지 못할 만큼 강렬하면서도 고요한 눈빛으로 안도감을 표시했다. 정말 그녀의 눈빛은 그랬다. 그녀가 내 말에 안도했다고 생각되자 나는 갑자기 마음 한쪽이 아렸다. 무슨 말을 해도, 그녀와 내겐 위로가 되지 않을 것만 같았다. 나는 다만 그녀가 지금처럼 그렇게 바다와 대면하며 지내기를 바라는 마음뿐이었다. 나의 바다에도 그녀가 없듯이, 그녀의 바다에도 그녀가 없기를. 간절히, 간절히…말이다. 그녀가 나가기 위해 카페의 유리문을 열었다. 자연스럽게 바닷물은 그녀에게 멀찍이 떨어지듯 물러났다. 그녀가 시야에서 사라지자 당연하다는 듯이 바닷물도 사라졌다. 그때서야 나는 밖이 상당히 어두워져 있음을 알아챘다. 거리는 코발트 블루색의 하늘만 눈에 들어오는 이른 저녁의 모습이었다. 멀리 보이는 하늘의 노을은 아직 깊은 기운이 그 끝까지 닿지 않았다는 듯 여리게만 보였다. 조금은 포근한 문밖의 거리는 그렇게 왠지 그리움만 가득 담고 있었다. 그녀를 다시 보는 일은 없었다. 나는 분홍색 커피 잔을 바의 선반 맨 위에 두고, 그 후로는 쓰지 않고 있다. 그 밑에는 작은 메모를 덧붙였다.

<For The Woman of the Sea>